생활노하우

[스크랩] 원했던 삶을 살고들 계십니까???

왕게으름 2011. 3. 25. 16:51

[스크랩] 원했던 삶을 살고들 계십니까???|아름다운 미혼
우유부단남 | 등급변경 | 조회 224 |추천 0 |2011.03.09. 14:11 http://cafe.daum.net/10in10/DrC3/241291 
//

 

 

 

나는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

에 대한 문제는 우리 인간들의 역사에서 아주 오래된 고찰 중의 하나이죠. 

=================================================================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 자신의 바람직한(desired) 상태에 대해 꿈을 꿉니다.

 

'난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 '난 이런 사람이 되야 해'

하지만, 나의 현실이라는 게 따로 존재하죠.

즉, 난 지금은 겨우 이런 사람 정도,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한참을 가야 할 정도.

 

바라는 상황과 현재 상황 간의 차이. (self-discrepancy)

 

이 간격이 좁혀지지 않을 때, 사람들은 낙심하고 우울해 하며,

한편으로는, 이 간격을 좁혀내기 위해, 죽을둥살둥 노력하고 전진하기도 하죠.

 

목표의 달성.

이 수준에 이르게 되면, 당연히 깊은 환호와 광범위한 짜릿함이 물밀듯이 밀려오게 됩니다.

이른바, "자아실현"이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살면서 겪는 정서적 경험이라든지, 스트레스, 갈등, 동기적 요소 등은

크게 보면, 모두 이 자아실현이라는 테러토리 내에서 움직인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근데, 이 자아란 것이, 즉, 도달해야 할 "바람직한 자아"라는 녀석이 다시 2가지로 나뉩니다. 

 

이 부분을 꼭 체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 삶의 전체적인 방향타를 쥐고 있는 것이, 바로 이 2가지 서로 다른 자아의 모습들이니 말입니다.

 

이 둘을, 미국의 유명한 사회심리학자 Higgins가 다음과 같이 명명합니다.

 

"ideal self" & "ought self" 

 

즉, 이상적 자기와 당위적 자기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상적 자기는 내가 가슴으로 열망하는 나 자신의 바람직한 모습이며,

당위적 자기는 내가 반드시 되야 하는 머릿 속에서 그려지는 나 자신의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가장 좋은 건, 이 둘이 일치하는 건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조건이 충족되야 하죠.

 

"내가 꼭 해야만 하는 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여야 한다."

 

이를테면.

코비 브라이언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농구겠고,

또, 가장 잘하는 농구선수가 되는 것이 그의 당위적 자기일 겁니다.

 

가장 좋아하는 걸 해서(ideal),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것(ought). 이게 최상입니다.

 

 

 

근데, 현실은 어떤가 한 번 살펴 봅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죠.

즉, 여러가지 관계들 속에서 살아간단 얘기며, 그로부터 수많은 책임과 의무, 권리, 보상, 처벌 등이 파생됩니다.

 

다시 말해. 내가 사회적 동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까진 "만족시켜줘야 할 선"이란 게 존재한단 얘기인데,

쉽게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시키기 위해, 내가 "지켜내야 할 수준"이란 게 있단 겁니다.

 

엄마, 아빠에게 인정받는 아들/딸이 되기 위해

상사에게 인정받는 부하가 되기 위해

여친/부인에게 사랑받는 남자가 되기 위해 기타 등등.

 

그렇습니다.

이 얘기는, 어쩔 수 없이 당위적 자기로 우선 동기화될 수 밖에 없는 우리들 현실에 대한 겁니다. 

 

사회적 동물로서, 주변인들의 사회적 지지를 얻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우선순위로 당위적 자기부터 만족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단 얘기에요.

 

네, 까놓고 말해서, 우리 모두는 국/영/수부터 우선 잘했어야 했단 소리죠.

 

 

 

굳이 구분을 해 보자면,

이상적 자기는 대개 나 자신으로부터 만들어지는 반면,

당위적 자기는 앞서 말했듯, 보통 나에게 유의미한 타인들에게서 형성되기 마련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내"가 알죠. 다른 사람은 몰라요.

but, 내가 되야 하는 것. 그러니까, "누가 생각해도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상태"라는 건, 내 일이 아니라도 누구나가 압니다.

그리고 보통은, 인생의 경험이 많은 쪽이 당연히. 더 잘 알고 있을 거에요.

 

그래서 대개는, 다름아니라 부모들이 그들 자식들 인생의 조타수 역할을 떠맡게 되죠. (자의든 타의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자식들은, 부모로부터 주입된 "당위적 자기"부터 우선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또, 그 당위성을 지켜내기 위해 아둥바둥거리며 그들의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어렵게 얘기할 필요 없겠죠.

 

-+-+-+-+-+-+-+-+-+-+-+-+-+-+-+-+-+-+-+-+-+-+-+-+

필수교육기간의 당위성은, 좋은 대학 가기.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입대의 당위성이 따라 붙고,

제대하고 나면, 좋은 데 취업하기.

취업하고 나면, 결혼 잘하기.

결혼하고 나면, 안정적으로 돈 벌어오기. 애 잘 키우기. 

-+-+-+-+-+-+-+-+-+-+-+-+-+-+-+-+-+-+-+-+-+-+-+-+

 

이건, 쭉쭉 뻗어나간다는 느낌보다는, 매번 클리어클리어 여기서 떨어지면 끝 반드시 클리어시켜야 함의 느낌이죠.

 

등 떠밀려 사는 느낌. 이라고나 할까요?

 

 

 

"자아실현"의 얘기로 돌아와 보도록 하죠.

 

그래서 결국, 당위적 자기의 달성에 어떻게든 많은 가치와 비중을 부여하게 되면,

내적 갈등없이 잘 살 수 있을 겁니다.

 

이를 테면, 판검사가 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서, 판검사가 됐으면, 그걸 자아실현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근데, 당위적 자기 팩터에서 자아실현까지 불릴 정도라면,

그건 보통의 성공 정도로는 논할 수 없을 지도 모르겠군요.

 

즉, 누구나가 인정할 정도로 소위 잘 나가는 게 아니라면,

난 내 당위적 자기에서, 자아실현에 뒤따르는 짜릿한 쾌감까진 느끼지 못 할 겁니다.

그저, 아 이 정도 했음 됐지, 해야 할 건 다 하고 있잖아 정도의 안정감을 느끼는 수준이랄까요?

 

그렇다면, "자아실현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게 됩니다.

 

우리가 당위적 삶에 지쳐, 미처 인식하지 못 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문제가 어느정도까지 해결이 안 된다면, 얘는 우리의 평생을 쫒아다니며 괴롭힐 겁니다.

 

이건 "내 존재 가치에 대한 확인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자아실현에 대한 열망의 역치가 어느순간 선을 넘어가게 될 때,

우리들은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즉, 당위성을 어느정도 포기하더라도, 내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거죠.

 

--나이 먹어서 공부하면 힘들다-- 라는 말이 머리가 굳어서라곤 생각치 않는 사람입니다.

나이를 먹게 되면, 두 손에 쥐고 있는 것, 두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것 등이 자연스레 많아지게 되죠. 
그리고 그것들의 대부분은 당위성과 연결이 됩니다.

돈, 직업, 결혼, 부모님 봉양 등의 문제가 날 얽어 메고 있는 이상에야,

그것들을 물리치고, 나만의 길을 간다는 건 쉬운 일도 아니고, 어찌보면, 바람직한 선택이 아닐 지도 모르죠.

그래서, 나이를 먹게 되면 공부하기가 힘들어 집니다.

결혼도 해야 하고, 부모님도 모셔야 되고, 뭣도 필요하고, 뭣도 해야 되는데,

책상머리에 앉아서 공부만 하고 있을 순 없잖아요?

 

다시 말해 이건, 당위적 자기를 버리기 힘듦을, 즉 이상적 자기로의 삶의 전환이 어려울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해 내는 사람들은, 뭔가 각고의 결심을 했다거나, 대단한 동기가 있다거나, (당위성을 포기할 정도로)

 

아니면, 그 본인이 돈이 많거나, 부모님께서 정정하신데다 부자시라거나, 혹은 와이프가 내조의 여왕이라거나.

즉, 당위성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사람들일 수 있겠죠.

 

주변에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사람들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부럽고 뭐 그러잖아요.

그것 자체가 "이상적 자기 실현의 어려움"을 반증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나는 못 한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들이 더 대단하게 보이는 거겠지요. 

 

 

 

그게 끝이 아닙니다. "암초"가 또 있어요.

 

Higgins는 이상적 자기와 당위적 자기의 추구가 서로 다른 정서를 경험하게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이상적 자기의 경우에는, 

성공 시, "즐거움(cheerfulness)"의 정서가, 실패 시, "낙담(dejection)"의 정서가 발현되는 반면,

당위적 자기의 경우에는,

성공 시, "안도(quiescence)"의 정서가, 실패 시, "불안(agitation)"의 정서가 유도된다고 보는 거죠.

 

우리가 당위적 자기의 연속선상(continuum)에서 안도와 불안을 그때그때 바꿔 가며 경험하고 있다면,

어느 정돈 포기해 버렸기에, 이상적 자기로부터 얻게 될 즐거움의 정서 역시 같이 놔 버려야 하는 걸까요?

 

아니죠. 아니에요.

즐거움의 정서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단순한 쾌락"을 추구함으로써 말이죠.

 

TV, 인터넷, 취미활동, 여자, 기타 등등. 

 

즉, 삶의 안정감을 위해(당위성 확보) 내 시간의 대부분을 소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별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상대적으로 단순한 즐거움"으로 자기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는 겁니다.

 

"쾌락주의 원칙(hedonic principle)"에 의거한다면,

즐거움의 충족이란 삶의 질에 필수적 요소이므로, 어떻게든 만족시켜야겠죠.
행복감을 느끼려면, 취미나 애인 등의 요소가 필수불가결하다는 얘깁니다. 

 

 

 

근데, 이렇게 당위성에 등떠밀려 온 삶을 살아 오다가, 그 짐을 던져 버리고, 이상의 세계에 들어오게 되면,

"상황이 묘해집니다."

 

내가 원해서라기보단, 당위적으로 해야 했기 때문에 해 왔던 일들로부터 자유로워지니,

 

나에게 하늘을 가르고 땅을 뒤엎는 자아실현 파워가 생긴다기보다는,

"자유라는 허울좋음으로 둔갑한 나태란 놈의 방종"이 시작될 가능성이 크더란 겁니다.

드디어 속박에서 풀려났다 이거겠죠.

 

그러면서, 여전히 즐거움의 요소는 상대적으로 단순하고도 쉬운 원천(source)들로부터 찾으려 합니다. 

TV, 인터넷, 취미활동, 여자, 기타 등등. 

 

자고로, 노력이 필요한 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성의 힘이 금방 소멸해 버리지만,

별다른 노고없이 쉽사리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일이라면, 관성의 영향력은 배가되기 마련이죠.

즉, 쉽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라면, 포기하기가 쉽지 않단 겁니다.

 

경우에 따라선, "엄청난 부작용" 일 수 있겠죠.

 

-----진정한 즐거움을 실현시키기 위해, 당위성을 포기하고, 이 쪽 동네로 건너 왔는데,

나태란 놈으로부터 방해를 받아, 이상적 자기를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게 되고,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얻기 쉬운 단편적 쾌락들에 몸을 맡기게 되는 한편,

당위성을 버린 결과로 필연적으로 얻을 수 밖에 없는 "불안"에 시달리게 됩니다.-----

 

각고의 결심과 노력이 공존하지 않는다면, 이 시나리오로 전개될 가능성이 클 거에요.

 

바로, 자아실현이 쉽지만은 않은 또 다른 이유입니다.

 

 

 

코비 브라이언트 같은 사람은 소수에요. 즉, 최상책을 지닌 사람들은 얼마 없을 거란 얘기지요.

(이상적 자기 = 당위적 자기)

 

그렇다면, 각자 입맛에 따라, 차선책을 노리는 편이 현명하겠죠.

 

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

① 이상적 자기로 전환 후, 미친듯이 노력하여,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일가를 이룬다.

② 우선은 당위적 자기로 어느정도 일가를 이룬 뒤, 이상적 자기로 전환한다. 

③ 당위적 자기에 충실하면서, 이상적 자기의 부분은 그 규모를 축소시켜 취미의 정도로만 만족한다.

-+-+-+-+-+-+-+-+-+-+-+-+-+-+-+-+-+-+-+-+-+-+-+-+-+-+-+-+-+-+-+-+-+-+-+-+-+-+-+-+-+-+-+-+-

 

만학도들의 성공이 1번의 사례이며,

루시드폴은 2번의 경우가 되겠고,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는 회사원들의 경우라면, 3번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앞의 두 케이스는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높죠.

아무래도 3번 케이스가 가장 쉬워 보이는데, 우리나라 회사들이 저렇게 할 수 있도록 내비려 두지 않는다는 게 문젭니다.

그래서, 근무 여건이 좋은 회사들이 그렇게나 선호되는가 봅니다. (칼퇴근, 주5일제 근무, 재택 가능 등)

 

 

어렵네요.

하지만, 그렇다는 것은 돌려 말한다면, 이건 누구나가 겪고 있을 고민이요, 갈등거리란 얘기도 됩니다.

 

즉, 나만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란 거죠. "just one of them" 이란 말입니다.

==================================================================  

 

 

내가 원했던 삶을 살고 있는가?

 

 

인생에 정답이란 없겠죠.

지금에 충실하는 것도 행복의 또다른 일면이고, 자아를 찾아나서는 길 역시 행복의 또다른 차원일 수 있어요.

 

다만, 상황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또,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 지에 대해 미리부터 감을 잡아 놓는 게 중요할 겁니다.

 

알고 나면, 정리는 쉬워지기 마련이죠.

 

 

이상적 자기와 당위적 자기, 우리들 삶의 큰 부분을 조정하는 방향키와 같은 개념들입니다. 

 

손자가 얘기했듯,

우선은 나부터 알고 보는 게 중요하니까.

 

아무리 바쁘더라도, "스스로를 관조하는 시간" 만큼은 빠뜨리지 않는 편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손자 얘기가 맞다면, 그래야 만사에 백전불태 수 있을 테니까요.-

 

 

 

※ 저 역시 이번 스압에는 질려 버렸습니다. 대단히 죄송하다는.. 휴

 

※ 무명자 블로그 http://blog.naver.com/ahsune

 

 

 
//
출처 : 텐인텐[10년 10억 만들기]
글쓴이 : 서현&규환아빠 원글보기
메모 :